홈으로

자 유 게 시 판



 Category
  
이름:   강채식 
제목:    지역교회를 옮기는 일-김홍전목사님과 칼빈-퍼온 글

지역교회를 옮기는 일-김홍전목사님과 칼빈
                                                김우곤    

우리가 지역교회에 속해 있다가 그 교회의 문제 때문에 도저히 계속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교회를 떠나려고 할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닌지 심히 주저되고 고민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알게 되면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에 근거가 있어서 양심의 자유함을 누리면서 지역교회를 떠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분들의 가르침의 전체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여 도움을 받아야지, 일부만 끌어다가 자기의 사사로운 목적에 증거로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바른 보편교회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랑을 가져야 마땅하지만, 그것과 잘못된 지역교회에 대한 맹목적인 존중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처럼 기묘한 배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역교회들이 많을 때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분별을 잘 해서 헛된 신앙으로 방황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복」 김홍전, 산상보훈 1, 성약출판사, 166-167쪽("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2)")에서 인용함

이제 다시 한번 강조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의라는 개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미 충만히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말씀 가운데에서 더욱 깊이 연구하고 깊이 깨닫고 그 깨달음 위에서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의다. 저렇게 하는 것이 의다' 하면서 '교회가 갈리지 않고 꼭 뭉치는 것이 의다. 모든 교회는 강하게 합쳐서 거룩한 교회로 주님의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이 의지 만약 그것을 가르면 열교, 즉 주님의 몸을 찢는 일이다' 하고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식의 그릇된 해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교회의 거룩하다는 속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는 다만 통일성을 가졌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합니다. 통일성, 일체성이 교회가 가진 중요한 속성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오히려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는 구별된 것이고 거룩하다는 속성입니다. 교회는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하고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구별한 것이어서,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지 않고 사람이 생각한 철학 가운데 자기네끼리 뭉쳐서 움직일 때에는 감연히 거기서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의입니다. 이래서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신 도리를 바로 안다는 것이 참 중요한 일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저급하고 저회적인 지식 가운데 덮어놓고 저돌적으로 나가면서 그것이 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는데 만일 우리가 참으로 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을 느낀다면 분명히 먼저 무엇이 의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칼빈이 「사돌레토 추기경에게 보내는 답변」이라는 편지에서  자기의 "갑작스런 회심"과 관련하여 밝히는 내적 갈등과 하나님께 간구하는 고백
(「성신의신학자, 존 칼빈」 파브르 교수, 개혁신앙강좌 3, 성약출판사. 15-16 쪽에서 인용함)

주님의 모든 백성에게 등불처럼 비추었어야 할 주님의 말씀은 빼앗김을 당했습니다. …… 그들이 참으로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용납하심을 전했지만,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마땅히 보이는 자들에게로 국한했습니다. …… 하지만 제가 이 모든 것을 행했을 때에, 비록 얼마간의 침묵하는 공백이 있었지만, 여전히 양심의 참된 평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자신 속으로 내려가든지 혹은 제 마음이 주님께로 향할 때마다 지독한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속죄(expiation)나 보속(satisfaction)도 치유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신을 면밀히 살피면 살필수록 제 양심을 찔러 쏘는 것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래서 제게 남은 유일한 위안은 망각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뿐이었습니다. 여전히 더 나은 것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저는 이미 시작한 그 길로 계속 나아갔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아주 다른 형태의 교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적 고백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고백을 그 원천으로 되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찌꺼기를 제거하여 원래의 순수함으로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새롭다는 이유로 마음이 상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집요하게 거부했습니다.

…… 특별히 저 새로운 선생들에게 반감을 갖게 만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저의 존경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귀를 기울여 가르치는 내용을 들었을 때 저는 교회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을까 하는 이 두려움이 근거 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로부터 분리되는 것과 교회를 오염시킨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제게 일깨웠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이제, 오 주님, 저와 같이 곤고한 자에게 남은 것은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내팽개쳤던 저 두려운 일에서 제가 행한 대로 심판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탄원하는 것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이한 선하심으로 저를 마침내 거기에서 건져 내셨사옵나이다.

http://reformedjr.com/board02/5364
  

  

PREV
   사순절을 지키는 것이 비성경적인 이유

강채식
NEXT
   노회사경회안내 2017년4월24일오후(8시)

강채식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ggoya